입맛이 없어 자주 그랬듯 저녁을 먹다 도로 상을 물리고 비연은 그날, 밤이 늦도록 궁 안을 서성이며 생각, 생각을 했다. 어떤 가정을 하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대개는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종류였다. 고작 고뿔에 그가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상상, 모두를 물린 황제의 침전에 감히 자객이 들이닥치는 상상, 혹은 그가 고뿔을 핑계로 한 광증에 걸려 또 다시 궐 안에 피바람 닥치게 하는 상상 같은 것들. 그러다 해시亥時가 끝나고 자시子時가 시작됨을 알리는 종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비연은 무엇에 홀린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껴입었다. 이리 답지 않게 신경을 써서야 될 것도 안 되겠다는 마음이 반, 순수하게 그가 정녕 홀로 있는지, 후원에 진실로 그리 오래 있다 간 것인 지, 왜 그렇게 오래도록 자신에게 목을 맬 것처럼 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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