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째 로그

함께 별을 보러 가자며 처음으로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고 칭얼거렸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별이 두 번째 결심을 하고 봄밤 언덕으로 올라섰을 때 환한 은하수와 성운의 모습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흰 알갱이가 뿌려진 것 같아, 데비가 말하면 레토는 아주 오래 전의 빛이 이제야 지구에 닿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비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에 레토는 그에 대해 더 상술하지 않고 다시 웃으며 그렇게만 말했다. 기억나지 않는 아주 먼 데에서부터 여기를 사랑해서 시간을 넘어 보러 온다는 거야.

16번째 로그

그러나 꿈은 현실의 역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데비는 눈밭에서 널브러진 채 미동도 않는 레토를 보았다. 그의 머리칼은 그렇잖아도 눈 같은데 내리는 싸락눈에 덮여 마치 레토 블랜차드 자체가 겨울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비는 자신이 건들지도 않은 몸이 제 쪽을 향해 손을 뻗은 채로 굳어 있는 것을 본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언제나 죽는다…… 그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고. 눈이 자꾸 내리는데 그때에 데비는 몽중에서 시리게 부는 칼바람과 내리는 눈발도 개의치 않고 맨발로 설원을 향해 뛰쳐나갔다. 레토, 일어나. 레토? 레토……. 몇 번을 호명하며 흔들어도 큰 몸뚱어리가 더 움직이지 않는다. 따뜻하지도 않다. 창백한 뺨에 눈발이 앉았다가 물로 녹아내렸다. 그쯤에 데비는 깼다. 그리고 이 계절에는 눈이 내리지 않음을 늦게 깨달았다.

15번째 로그

"왜 웃어."
"좋아서."

견딜 수 없이, 못 견디도록……. 데비 블랙은 레토 블랜차드가 했던 말을 기억해낸다. 섹스라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할 적에도 레토는 그런 식으로 말했다.

인간은 짧게 살고 그만큼 빠르게 변한다. 데비는 반 세기를 같은 모습으로 살아오면서 빈곤한 아이로 거리를 누비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군상을 보아왔다. 까만 시선이 레토의 얼굴을 훑는다. 촛불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신부의 방에서 이 새벽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윤곽뿐이다.

"내가 뭘 해도 좋아?"

데비가 물었다. 시험하듯이. 레토의 대답은 단박에 나온다.

"응."

14번째 로그

"추운 걸 싫어하잖아."

레토가 말했다.

"눈을 좋아할 줄은 몰랐어, 데비."
"겨울이니까."

품에 안은 채로 했던 대화와 비슷하여 기시감이 든다. 겨울이니까. 데비는 조금 뜸을 들인 뒤 레토의 말을 이었다.

"……겨울에는 밤이 일찍 오잖아. 사람들은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녀. 눈이 오는 날이면 더 그래."
"……."
"그래서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아."

13번째 로그

구멍 같은 생이 여기에 있다. 타나토스 블랙은 새까만 이름을 가진 채로 망령과 함께 생을 배회한다.

12번째 로그

일어선 타나토스의 그림자가 데이비드의 얼굴을 가렸다. 타나토스는 어두운 데이비드의 얼굴을 망연하게 내려다봤다. 거리에 하나밖에 없는 노란 가로등이 데이비드의 몸뚱이를 비췄다. 언뜻 드러난 발목이 멍투성이였다. 사람과 물건에 치인 흔적인지 주삿바늘 자국인지는 확실히 분간하기 어려웠다.
덜 아문 흉터 같은 멍들을 보면서 다리가 저린 줄도 모르고 같은 자세로 오래 서 있었다. 데이비드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노란색 조명이 영화처럼 오버랩됐다. 무대 위에 있을 땐 그게 태양 같아 보였는데. 그래서 연약한 인간이 견디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과학과 의학으로 먹고사는 구조대원이 신화 같은 이야기나 들먹이는 꼴이 한심했다.

11번째 로그

Wind buffeted Leto’s pale hair, tousling it. His eyelashes blinked once, twice, absentmindedly following the fumes trailing from between her fingers.

“Can I have one?”
She paused. “You never smoked. You needed your voice.”

Even if he didn’t need to sing anymore, she still didn’t like the notion of anything that would… taint him. She hesitated, her fingers wandering uncertain over her cigarette case. Did he mean it? “Really?”

“I’m just curious, that’s all. Whatever it is you do, I’m willing to try. The sort of thing.”
“…Easy to say.”

Leto watched the faint lights dance across her cheekbones, flickering and uncertain. Bright but never staying. Wishes he’d buried deep, hollow space between them, invisible but loud.

On impulse he leaned toward her and took her hand. She flinched slightly; but otherwise let him lower his head toward the pale cigarette and take a long drag. Smoke trailed out of his mouth, heavy and noxious. He crinkled his eyes in reflex, instinct rejecting the toxic flavor.

“…Bitter. And foul.”

10번째 로그

너를 위해. 너를 위해, 아, 오로지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돌고 돌아서 다시금 너를 위해. 구애와 닮은 맹목. 데비 블랙은 몰랐겠으나 그 순간 데비는 죽은 아가사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더 없어 보인다. 그 말인즉슨 존재 이외에는 바라는 것 하나 없다는 뜻인데, 그러한 형태의 열망은 그가 정녕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한가.

9번째 로그

레토는 무척 낭만적인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열린 문틈으로 비치던 등잔 불빛.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 순간을 데비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유도 알 만 했다. 데비는 더 이상 소설의 책장을 넘기지 않고 레토를 오래 바라봤다. 그는 수려하게 웃고 있었다. 천사처럼. 오, 맙소사. 이는 불경한 비유다.